「Zone of Interest」 – 보이지 않는 폭력, 들려오는 학살

  •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한국전쟁이 끝난 지 72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80년이 지났다. 세기말에 눈을 뜬 세대에게 참혹한 전쟁의 역사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며, 직접 겪지 못한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전쟁에 얽힌 영웅적 일화나 기적 같은 작전들이 종종 ‘영광의 시간’처럼 미화되어 기억되곤 한다.

이것을 방증하듯,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리얼리즘에 기대어 수없이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전후 영화와 현대 전쟁영화는 관객이 전쟁을 체험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전후 영화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기억 속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피 묻은 질문들을 던졌다면, 현대 전쟁영화는 참혹함을 시뮬레이션하듯 자극적이고 실감 나는 시청각적 연출로 스펙터클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전쟁영화는 그동안 ‘그럴듯한’ 전후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미지와 설득력 있는 연출로, 이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주입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지금껏 재생산되어 온 2차 세계대전 영화 속 시뮬라크르적 기억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인류사적 비극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룬 작품들이 그렇다.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 스티븐 스필버그),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è bella>(1997, 로베르토 베니니), <피아니스트 The Pianist>(2002, 로만 폴란스키)와 같은 영화들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인간 존엄의 붕괴, 기억의 정치성, 트라우마의 영상화, 그리고 침묵과 응시의 미학을 통해 깊은 사유를 요구해왔다.

이렇듯, 전쟁영화는 어떤 장르보다 인간 존재의 모순과 정체성에 대한 구조화된 성찰을 담아낸다. 관객은 단순한 서사 소비자가 아니라, 해석과 사유를 요구받는 존재로 설계된다. ‘이렇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폭력과 잔혹함을 재현하는 시청각적 장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기억’을 자극하며, 상징적인 이미지와 일상적인 사건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2차 세계대전이나 전후 영화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면, 이 영화에서 큰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을 계기로 역사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먼저 보는 편이 감각적으로도, 그리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Zone of Interest』가 전달하려는 전쟁의 잔혹함과 그 기운을 온전히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영화 제목이 가리키는 ‘관심 구역’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그 주변 생활·작업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착취와 관리, 그리고 일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얽혀 돌아가던 실재의 공간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학살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화면 속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절감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보여주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관객을 서서히 숨 막히는 깨달음으로 몰아넣는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을 따라가다 결국 의미의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처럼, 우리는 문득 뒷목이 서늘해지는 ‘평범한 악’과 마주하게 된다.

  • 시청각적 스타일 분석

조너선 글레이저(Jonathan Glazer)의 <Zone of Interest>(2023)는 전쟁영화라는 장르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시청각적 관습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 영화는 폭력과 학살을 전면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담장 너머의 참상을 멀찍이 둔 채, 카메라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공간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관객은 인물들의 루틴 속에 스며 있는 불가해한 공기, 보이지 않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시각적 전략은 명확하다. 고정숏과 장시간 롱테이크가 장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물과 배경을 관찰한다. 프레임 속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굴뚝과 연기, 담장과 같은 간접적 표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폭력의 현장은 결코 화면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 부재의 프레임은 관객이 그 빈자리를 스스로 상상하도록 강요하며, 일상과 폭력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청각은 이 영화의 숨겨진 중심축이다. 존니 번스타인(Johnnie Burn)의 사운드 디자인은 비명, 총성, 기계음 등 폭력의 잔향을 프레임 밖(off-screen)에서 들려준다. 이 소리들은 결코 완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종종 공간적 출처조차 알 수 없다. 음악 또한 미카엘 레비(Mica Levi)의 불협화음적 구성으로, 시각이 보여주지 않는 불안을 청각이 대신 증폭시킨다. 이러한 사운드 전략은 ‘보이지 않는 폭력’을 오히려 더 실감 나게 체험하게 만든다.

색채와 조명은 철저히 절제되어 있다. 채도가 낮고 자연광에 가까운 톤을 유지하며, 실내 역시 환경광을 그대로 살린다. 그 결과, 관객은 재현된 세트를 본다기보다, 마치 기록된 일상을 목격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 ‘기록성’의 질감은 영화의 폭력 부재 전략과 맞물려, 일상 속에 숨은 학살의 실재성을 더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모든 연출 전략의 핵심은 ‘부재와 은폐를 통한 폭로’다. 영화는 결코 절정의 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다. 대신, 동일한 루틴과 반복을 통해 ‘비정상적인 평범함’이 차츰 불편함으로 번지게 만든다. 관객은 끝까지 목격자가 되지 못한 채, 그러나 결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위치에 놓인다.

전통적인 전쟁영화가 참혹함을 시각적 스펙터클과 감정적 몰입으로 전한다면, <Zone of Interest>는 시청각적 결핍과 거리두기를 택한다. 덕분에 관객은 스펙터클의 소비자가 아니라, 윤리적 목격자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한나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 악(Banality of Evil)’을 체감하게 만드는 미학적 장치다.

결국, <Zone of Interest>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각인시킨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간극 속에서,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얼굴을 한 인간의 악이다.

후반부, 현실의 아우슈비츠가 당시의 잔혹함을 전시하고 있는 장면은 압권이며,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다시 본 예고편을 보며 영화가 보여주는 일상의 이미지가 연결되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헛구역질과 어지러움은 과연 우연일까?

-글쓴이 김희대(Heedae kim)